내소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변산반도 남단에 있는 사찰로 좋은 기도 도량이며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서 같이 역사를 하고 있다.
병풍을 두른듯한 얌전한 산세는 부처가 살고 있듯이 그저 고요할 뿐이다. 산 머리 밑에 있는 암석이 푸른 하늘과 곱게 물든 단풍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10년전 집사람과 내가 좋아하는 매이지 않는 여행 ! "구름따라 바람따라" 여행 일정에 그저 무심코 운전대를 돌린곳이 내소사 였고, 방문했던 그해 가을에도 금년같이 아주 좋은 날씨였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을 향하는 고즉녁한 전나무 숲은 월정사의 웅장한 전나무 숲과는 달리 우리의 마음과 같이 하는 친근감이 있는 숲길이다. 숲길을 지나면 코끝을 스치는 향이 이승을 잊게 만들었는데 올해의 방문은 사찰앞의 상혼 때문에 전어 구이 냄새와 어우려진 막걸리 냄새가 그 옛날의 정취를 더욱더 간절하게 만든다. |
[내소사의 역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원래 이름은 소래사(蘇來寺)였으며 633년(선덕여왕 2) 신라의 혜구(惠丘)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석포리에 상륙해 이 절을 찾아와 군중재(軍中財)를 시주한 일을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내소사로 바꿨다는 설이 있으나 사료적인 근거는 없다. 이 절에 관한 기록은 〈동국여지승람〉과 최자의 〈보한집 補閑集〉 가운데 정지상이 지은 〈제변산소래사 題邊山蘇來寺〉라는 시가 있고, 이규보의 〈남행일기 南行日記〉가 있는데 모두 '소래사'로 기록되어 있어 언제 '내소사'로 바뀌었는지 분명치 않다. 1633년(인조 11) 청민(靑旻)에 의해 중건되었고 1902년 관해(觀海)에 의해 수축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이 절에 있는 중요문화재로는 고려동종(보물 제277호), 법화경절본사경(보물 제278호), 대웅보전(보물 제291호), 영산회괘불탱(보물 제1268호)가 있고 그밖에 설선당(說禪堂)·보종각(寶鐘閣)·연래루(蓮萊樓)·3층석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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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소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 보물 제291호. 앞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팔작지붕 건물로 다포(多包) 계통의 불당이다. 잡석으로 쌓은 비교적 높은 축대 위에 낮은 기단을 두고 자연석의 초석(礎石)을 배치했으며, 그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모서리기둥[隅柱]만 배흘림이고 나머지는 곧은 원기둥[圓柱]이다. 앞면의 기둥 사이에는 중앙칸에 사분합(四分閤)문을, 좌우칸에 분합문을 달았는데 문짝은 초화무늬[草花紋]가 정교하게 투각된 꽃살문이다. 처마를 받친 공포는 다포계로 중앙칸에 3개, 좌우칸에 2개씩 배치되어 모두 11개의 공포로 결구되어 있다. 외3출목·내5출목으로 전통형식에서 벗어나 있으나 쇠서[牛舌]들이 겹겹으로 중첩되어 뻗어나와 있는 공포의 구성은 조선 중기 이후의 다포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건물 내부의 5개 출목에 걸쳐진 살미첨차에는 모두 연봉형을 새겼으며 소위 운궁(雲宮)이라는 장식적 형태로 변모되어 있다. 대들보는 앞뒤 기둥 위의 공포에 걸쳐졌는데 자연 그대로의 굽은 재목을 사용했다. 대들보 위에 동자형(童子形)의 대공(臺工)을 세워 종보[宗樑]를 받치고 우물천장을 가설했다. 대들보에서 건물 측면의 가운데 기둥에 걸치도록 각각 2개씩의 충량(衝樑)을 배치했다. 건물 내부의 뒤쪽에는 두 기둥을 대들보에 고정시켜 세우고 그 사이를 후불벽(後佛壁)으로 만들었다. 불단 위에는 아미타구품인을 한 불좌상과 좌우에 보살좌상을 안치했고 그 위에 닫집을 따로 설치하지는 않았다. 건물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니며, 평면은 중후한 방형을 이루고 있는데 이에 비해 기둥 높이가 낮아 단정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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